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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중 Kim kijoong의 Design Philosophy

와이드AR 20년 9-10월호(73호)_특집_가로건축_건축가 김기중_페이지_0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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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건축은 기본적으로 분명한 목적을 가진 디자인을 추구한다. 목적이 분명한 디자인은 사용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목적은 설계를 진행하기 위한 규칙과 개념으로 설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은 1980년대 '이론 전쟁'에서 출현된 건축의 새로운 방법론을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실제적인 구축과 이론적 가설 사이의 차이가 인위적인 규칙이고 필수적인 개념이다. 규칙과 개념은 창조적 사고의 프레임이고 이 프레임은 어어로 규정되어 진다. 언어는 어떤 의미를 대표하는 기호이다. 그 언어가 꼭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없고, 중첩되어지는 다양성은 창조의 수단으로 언어를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종교적으로 통합된 사회에서 언어는 억압되고 통제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시기가 중세 말기 서유럽에서다. 로마시대가 끝나기 약 200년전 콘스탄티노를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세력이 커지면서 각지에 면세 혜택을 받는 교회가 생겨났고, 거기에 종사하는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들이 생겼지만, 중세에 접어들면서 교황제가 확립되고 왕이나 영주보다 수입이나 군사력에서 앞서는 상황이 되어 중세는 그리스도로 통합된 사회였다. 그러다보니 그 당시 백성들은 당연히 그리스도를 믿어야한다고 생각했고, 거기에 의심을 갖지를 않게 된다. 그러다 중세 말기에 교황과 왕들 사이에 반목이 생기고 새로운 학문과 발견이 이어지면서 점차 인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신을 인간의 언어로 규정할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를 가지고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발전한 것이 교부철학파 스콜라 철학이다. 그렇게 철학이 그리스 이후 2000년 만에 서유럽에서 생겨나게 되고 당시 여러 학자들이 오리엔트지역의 그리스문화에 대한 연구실적과 과학기술의 발전, 고고학의 발견 등에 힘입어 연구하게 되었으며, 이를 정리한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그는 신은 인간의 언어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중도에 서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언어에 대한 철학자들의 고민은 현대철학에서도 여전히 고민거리였다. 무의식의 작동 방식(에고-이드-슈퍼에고)를 연구한 프로이트, 노암 촘스키의 심층구조와 표층구조, 푸코의 소외된 비이성적 사고(광기)의 의미와 역사적 관계, 자크 데리다의 전통적 서구철학에 대한 구조해체, 레비스트로스의 인간의 심층심리의 구조와 문화현상, 자크 라캉의 언어를 이용한 욕망과 무의식 분석 등에 걸쳐 철학자들이 이와 관련된 각자의 규정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을 펼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의미가 포함된 언어의 구조에서 이미지와 공간 그리고 형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공간이나 형태를 일컫는 명칭이 그 의미를 모두 나타낼 수 있는가 또한 고민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사용하는 공간의 다양성을 그 명칭이 모두 표현할 수 없다면 설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올바르게 설계하기 위해서는 공간과 형태에 대한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언어가 그 중의적인 의미를 표현해야 한다. 즉 건축공간을 이분법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설계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하나의 공간이 2개 이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자"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실제로 건축물의 공간 명칭이야말로 하나의 의미로 해석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중의적인 표현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중간공간, 전이공간, 더 나아가 정의하지 않은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언어의 규정이나 구조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건축 설계를 위한 사고를 발전시키는 과정과 연관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를 표현하는 방식이 언어를 기초로 한다고 보면, 건축가의 설계 아이디어도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건축설계 아이디어의 표현을 위한 언어에 어떤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건축설계 방법에 대한 사고가 계속 발전되어 왔다고 판단되는 지점이며 설계 아이디어라는게 좀 더 물리적인 용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시한다. 즉 좀 더 공간적이어야 하고 당연히 배치와 형태 그리고 디테일 등에 적용될 수 있는 건축적인 용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건축적 사고의 과정과 성과물 즉 건축물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가능한가가 중심이다. 대부분 사고의 과정이 언어에서 이미지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스케치다. 근데 스케치를 활용해서 설꼐 아이디어를 발전시키 때 의외의 함정이 있었다. ​그것은 스케치와 그림의 관계인데, 스케치는 건축가의 상상 속 혹은 무의식 속에 어렴풋이 존재하는 건축 공간이나 형태를 표현하는수단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스케치를 하다 보면 수다능로서의 기능을 망각하고 완성도 있는 그럴듯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좀 과격한 방식이긴 한데, 한동안 설계를 진행할 때 스케치를 하지말자고 생각을 했다. 설계에서 스케치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어떤 수단으로 설계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것인가?그래서 나는 스터디모델이야말로
건축설계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스터디모델로 설계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하는데 그 기준은 스케일, 칼라, 재료, 디테일의 수준 등이고, 이에 따라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몇 단계로 나누어 진행한다. 그런데 모델을 활용해서 설계를 진행하는 일에 분명한 장단점이 있었다. 왜곡되지 않게, 사실에 입각하여 작업함으로써 누구와도 협의를 쉽게 진행할 수 있었지만, 매번 모델을
만든다는 게 구성원들의 고단한 노력을 전제로 하는 일이어서 고민도 되었다. 그렇다고 모델 스터디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같이 실제로 투입된 지원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설계비 책정이라는 구조
속에서는 모델 중심의 설계 진행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 스케치에 대해서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스케치 혹은 이미지는 좁은 의미의 미술, 더 좁히면 서양화, 동양화를 위한 데생 등이 그것이다. 인간은 이미 구석기시대서부터 동굴 벽에 사실적인 스케치를 남겼는데 그렇게 사실주의적인 미술이 그리스와 로마시대에까지 이어졌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가 서유럽에 전파되면서 미술은 그저 성화의 수준에 머물렀다. 이 시대는 그저 중간시대라는 의미에서 중세라 칭하고 있고, 그 시대의 미술을 로마를 멸망시킨 고트족의 이름을 따서 고딕미술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미술의 진정한 부활을 이끌어낸 피렌체의 거장 조토와 건축물에 고전적인 모티프를 사용하는 르네상스적 방법을 도입한 브루넬레스키 이후 북이탈리아와 플랑드르(지금의 네덜란드)지역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지금 내가 고민하는 스케치와 모델의 조화에 대한 고민의
원류가 그 시대에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시민과 상인들로 구성된 도시가 발전하다보니 미술가들은 길드를 조직해 시의회와 함께 도시를 미화하고 번창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지금의 건축 관련협회와 비슷한 성격이었다.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 위대한 거장의 작품은 완벽했고, 오히려 완벽이란 영원히 흥미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놀랍고, 기발하고 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것을 추구하려 했다. 이런 일종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건전치 못한 태도는 괴상하고 기교에 치우친 쓸데없이 복잡한 실험을 하게 하였다. 이는 가식과 천박한 모방이라는 매너리즘, 그리고 터무니 없다거나 기괴하다는 의미의 바로크로 이어진다.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대 건축 4대 거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재를 또 다른 매너리즘으로 볼 수도 있겠다.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수백 년간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수많은 가설들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을 때, 진정으로 밝아오는 근대의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이때 미술에 대한 관념이 변화하였는데 첫 번째는 양식에 대한 태도의 변화인데 마치 벽지 무늬를 선택하듯 건물의 양식을 선택하도록 만든 자의식의 생성 징후였다. 이 시대 미술작품 중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고야의 〈거인〉(1818)은 전통의 단절이 가져온 뚜렷한 결과였고 오직 시인만이 누렸던 개인적이며 환상적인 세계를 종이 위에 자유롭게 펼쳐 놓았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 속의 증기선〉(1842)은 낭만주의 시를 읽거나 낭만주의 음악을 들을 때에 우리가 상상하게 되는 영혼을 뒤흔들고 마을을 압도하는 것과 같이, 터너에게 있어서 자연은 항상 인간의 감정을 반영하고 표현하는 존재였다.

 

나는 이때까지 서양화의 자유로운 진전에, 건축은 작은 변화에 큰 의미를 두었었다. 그렇지만 현재는 건축에도 영혼을 압도한다든가 환상적이라는 표현을 많은 건축물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런 표현은 몇몇
뛰어난 건축가들에게만 해당되는 기회이다. 독일에서 칸딘스키의 추상회화의 이념은 표현주의로부터 나온 것이고, 입체주의가 불러일으킨 화면 구성에 대한 관심은 파리, 러시아, 얼마 안 있어 네덜란드의 화가들 사이에 회화가 건축물과 같은 일종의 구조물로 될 수는 없을까 하는 문제의 제기로 이어진다. 몬드리안의 주관적인 눈에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형태들 속에 감추어진 불변의 실재를 밝혀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형태로 동시에 여러 가지 사물을 나타내도록 한 달리의 방식은 각각의 색채나 형태가 지닐 수 있는 다양한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이것은 시에서 음율이 비슷한 단어를 나란히 사용함으로써 단어의 역할과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하나의 프로그램에 2개 이상의 기능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의 추구와 유사한 시도가 회화에서도 일찍이 시도되었다. 르코르뷔지에의 경우에는 그의 사고 속에서 정말 중시된 것이 예술가와 자연, 예술가와 외관의 세계와의 직접적인 관계였다. 영감과 현실은 뚜렷이 구별되고 특별히 후자는 한층 낮은 활동으로 여겼다. 1936년 그가 요하네스버그의 건축가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식물을 데생하여 수목의 정수, 조개껍질의 조화, 구름의 생성을 표현하라’.

미술에 대한 이야기는 스케치와 그와 유사한 미술적인 건축설계 도구를 사용하는 데 대한 합리적인 목적의식을 갖게 한다. 뿐만 아니라 낡은 의미에서의 스케치와 활용이 아니라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 도구기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예를 들면 미술가들도 낡은 임무가 사라지면 새로운 임무가 생겨나서 미술가들에게 방향감과 목적의식을 부여해주듯이, 그러한 방향감과 목적의식이 없다면 위대한 작품은 결코 창조되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에서도 19세기 방황과 모색 끝에 현대 건축가들은 자기들이 나아갈 방향을 발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일반 대중들은 그들의 위대한 작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건축가는 계속 변화해야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공적인 영역이라는 건축의 기본적이고 숙명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행동해야 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당시 다양한 표현 양식의 혼란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어왔던 건축분야에 참신한 접근 방법을 제시하였다. 미래는 옛 것이건 새로운 것이건 양식이나 장식의 편견에서 탈피하여 새로워지고자 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예를 들면 시카고의 마천루를 유럽의 견본책에서 따온 장식으로 뒤덮는다는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사실이다. 라이트는 건축가가 의뢰인에게 전혀 선례가 없었던 비전통적인 집을 짓자고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에게 강인한 정신과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했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이렇듯 강인한 정신과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건축가가 추구하는 설계 이념을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설계를 진행하면서 건건이 의뢰인에게 새로운 설계 이념을 관철시키는 상황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경우에 의뢰인과 의견이 다를 경우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보다는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결과물 또한 만족할 만하지는 못했다.

‘구조라는 말은 철학적 이념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구조는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세부 표현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이념을 지닌 전체이다’라고 미스 반 데어 로에는 형태를 고안해 내는 것이 건축의 과제가 아니라고 했다. 라이트에게도 구조는 근본적인 관심사였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유기적이라는 단어로 그의 건축을 표현했는데 이 단어는 건축물에서 주로 콘크리트조 캔틸레버의 사용을 의미한다. 그것이 자연적이고 나무와 같은 형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존슨 왁스 본사 사옥에서 이 유기적 비유는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가늘어지는 버섯 모양의 기둥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9m나 되는 개방형 업무공간 내에서 주된 구조체를 이루고 있으며 이 기둥들은 천정 레벨에서 콘크리트조의 수면 잎사귀 같은 넓은 원형으로 표현된다. 한편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설계에 있어서 구조 더 나아가서는 기계라는 테마에 종속되어 있다. 내부에서의 공간적 동일함을 추구하거나 기능주의적인 외골격을 향하는 경향, 수사학적이며 장식적으로 기술을 이용하는 경향 등은 건축 설계에 있어서 구조를 활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가능성을 공상과학 소설의 기계괴물 모양의 건물 외관을 가진 건축물로 보여준다. 보통 구조는 건축가가 설계를 할 때 구조방식을 정하고 모듈이나 부재의 희망 사이즈를 정하고 보나 슬라브와 같은 구조 부재들의 설치 유무를 정해서 구조기술사에게 계산을 의뢰한다. 흥덕 복합 업무시설 프로젝트에서는 공개공지 상부 필로티 상부에 2개 층에 걸쳐 보를 삭제하기 위해 계산 가능한 구조 기술사를 찾아 다녀야만 했다. 안성 보나비스타 설계 시에는 초기에 구조기술사와 미팅하여 프로젝트의 목적을 공유하고, 구조기술사로부터 구조 부분의 도전에 대한 의지를 확인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는 단일 구조 방식으로 구성된 사례이고 그보다 근본적으로 여러 가지 구조방식 중에서 그 선택에 관한 것이 건축사에게 있으며 구조방식은 건축물의 공간과 형태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사비에도 심각하게 영향을 끼침은 물론이다. 거기에 구조를 노출시킬 경우나 대형 보나 역보 등의 아이디어를 설계에 반영할 때는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건축가는 미스, 루이스 칸과 같이 구조를 노출시키며 내·외부에 솔직한 디자인을 추구할 것인지, 라이트의 로비하우스나 낙수장에서와 같이 구조적인 건물이지만 실제 구조는 철저히 숨겨진 방식의 건물을 추구할 것인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두 가지 방식 모두 건축가가 구조에 대한 지식과 시공에 대한 노하우를 알아야 가능한 설계일 것이다.

미스는 구조의 골조와 충진재로서의 유리는 건축적으로 융합하는 것으로 보고 새로운 건축을 제시했다. 특히 멀리온은 이러한 변화를 위한 일종의 촉매로서 작용했다. 기둥과 멀리온의 크기는 창문의 폭을 결정하고, 각각의 구조스팬의 중앙에 있는 두 창은 기둥에 인접해 있는 것보다 폭을 넓게 변형하여 간격을 확대하고 수축하는 시각적인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강철의 불투명성과 유리의 반사성이 직물화 되어 미묘함과 풍부함을 지닌다.

지속가능한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음은 건축가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사회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코르뷔지에가 자신의 활동에서 ‘공적’, ‘사적’ 양면을 추구하며 대조적으로 공적인 사회에서 수행되는 ‘건축가라는 이 작업이 가져오는 비정함과 쓸쓸함’과 ‘사적인 영역에서 있어서의 자유로운 창의의 탐구로서 예술’과의 대비에 대해 항상 고민해왔다고 한다. 그것이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어려움이든, 공공에 대한 건축설계 분야의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좌절 혹은 희망이든 사적 업무와 조화를 이루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축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자연채광으로 공간을 비추는 아이디어나, 자연통풍이 자연스럽게 가능하도록 창호 개구부를 설계한다거나, 재료의 종류를 제한해서 재료의 운반횟수를
줄이고 디테일의 종류를 줄이는 설계를 하는 것들이 지속가능한 설계라고 생각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또한 세계화 되었고, 자체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근대 이후 도시는 문명화의 요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소비문화 이전의 문명화를 대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는 코르뷔지에와 같은 모더니스트들이 건축을 ‘빛의 영향 아래에서 볼륨을 숭고하게 다루는 것’으로 정의하는 자신감 있는 입장은 폐기될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건축가들은 도시의 혼란 속에서 창조성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 돈의 부패한 영향력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한편 개발업자들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예술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개발업자들과 ‘협력적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건축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세상에 형태를 부가하는 것이 아니라, 협상의 성과물로서 간주해야 한다. 건축가의 작업은 다루기 어려운 어렴풋한 인문학적 가설을 건축적 언어로 변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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